1장: 물에 빠진 전교 1등
“한서율, 네가 수영부 강주원 전담 튜터 좀 맡아라.”
담임 교사의 무심한 한마디에 서율은 쥐고 있던 샤프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네? 제가 왜요?”
“주원이 이번 중간고사 평균 60점 못 넘기면 전국체전 출전 자격 박탈이야. 명운이 걸린 일인데, 전교 1등인 네가 붙어서 턱걸이라도 시켜봐.”
서율의 인생은 잘 짜인 수식처럼 명확해야 했다. 오전 6시 기상, 수능 만점이라는 단 하나의 정답을 향해 달리는 완벽하게 통제된 삶. 그런데 그 단단한 일상에 '체육 특기생 낙제 방지 프로젝트'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들이닥친 것이다.
"유리창을 통과한 푸른 빛이 수면 위로 산산조각 나며 스며드는 시간. 태양의 온도가 가장 낮아지는 오후 4시, 블루 아워(Blue Hour)였다."
그리고 그 차가운 푸른빛 한가운데, 수면을 날카롭게 가르며 헤엄치는 사내가 있었다. 수영부 에이스, 강주원.
“…누구냐, 너?”
“오늘부터 네 시험공부, 내가 담당해.”
서율이 들고 온 요약집을 내밀자, 주원은 가가 막힌 듯 눈썹 한쪽을 씰룩였다.
“튜터? 어이가 없네. 나 공부할 생각 없거든?”
하지만 의욕이 앞선 것이 화근이었다. 수영장 바닥의 미끄러운 타일에 발끝이 헛돌았다.
콰당-! 퐁당-!
전교 1등 한서율의 인생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수영을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터진 순간이었다.
물속의 진공을 찢고 강력한 악력이 서율의 허리를 단숨에 감싸 쥐었다.
“…너 수영 못하냐?”
“놓으면 너 또 잠겨. 나 공부 가르치고 싶으면, 너부터 나한테 수영 배워. 안 그러면 나 시험 손끝 하나 안 댈 거니까.”
2장: 1대1 밤샘 과외와 묘한 기류
“여기서 진짜 공부를 하겠다고?”
수영부 휴게실의 낡은 나무 탁자. 서율은 수학 개념서와 직접 만든 오답 노트를 털어놓았다.
“로그는?”
“……그거 먹는 건가?”
뻔뻔하게 되묻는 주원의 반응에 서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주원의 눈빛은 놀랍게도 진지했다.
둘의 거리가 좁혀지자, 주원의 옷깃에서 특유의 서늘하고 청량한 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주원의 시선은 종이가 아닌 서율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전교 부회장 윤시우가 들어왔다.
“강주원 선수가 공부를 다 하고. 서율이 너 수능 준비하느라 시간 아까운 애야.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
주원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압도적인 키와 피지컬이 시우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시간 낭비인지 아닌지는 전교 1등이 판단할 문제 같은데.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냐?”
3장: 수영장 밖의 소동과 질투
주원의 집 원목 책상. 사복을 입은 주원은 학교에서 볼 때보다 훨씬 선이 굵고 아우라가 짙었다.
“네가 밤새워서 만들어준 건데, 대충 풀 수는 없잖아.”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지만, 서율의 가슴속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툭 던져진 듯 파문이 일었다.
그때 무용과 지망생 강이슬이 찾아왔다. 주원의 팔짱을 끼며 서율을 은근히 견제하는 이슬. 서율의 가슴을 지독한 질투와 답답함이 조여왔다.
다음 날 수영장, 주원이 서율의 앞을 막아서며 의자 팔걸이를 턱 짚었다.
“나 딴생각 안 하고, 네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할 테니까. 너도 딴 생각 하지 말고, 나만 봐.”
4장: 중간고사와 기적의 턱걸이
시험 성적 처리 날. 주원의 출전권이 걸린 평균 점수는 정확히 60점.
“평균…… 딱 60.1점이네! 턱걸이로 기준 넘겼다!”
서율은 수영장으로 단달려갔다. 훈련을 마친 주원을 향해 소리쳤다.
“평균 60.1점이라고! 너 전국체전 나갈 수 있어!”
주원은 망설임 없이 물 밖으로 나와 서율을 단숨에 번쩍 들어 올려 꽉 껴안았다.
“고맙다, 한서율. 진짜…… 고마워.”
서율은 천천히 주원의 젖은 어깨 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블루 아워의 푸른빛이 두 사람 위로 내려앉았다.
5장: 마지막 경기, 그리고 정답 없는 고백
전국체전 결승전. 주원은 폭발적인 킥으로 터치패드를 제일 먼저 때렸다.
[ 1위 - 4레인 강주원 : 48.12초 (대회 신기록) ]
환호하는 관중석을 거슬러, 주원은 오직 서율만을 향해 걸어 올라왔다.
“나 수식 같은 거 모르고, 정답이 뭔지도 몰라.”
주원이 서율의 떨리는 손을 덥석 잡았다. 수영장 물보다 더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정답은 하나 있어. 60.1점 받았을 때도, 금메달을 딴 지금도…… 내 정답은 전부 너야. 좋아해, 한서율.”
서율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응. 정답이야, 강주원.”